경주 남산
경주 남산
그리운 그 노래 나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아주 아주아주 오랜 옛날 황룡사 탑 그늘에 기대어 서서
당신은 그 노래 들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나는 아직 그 노래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탑도 사라지고 절과 사직도 사라져
고즈넉한 가을 절터와 당간지주만 남아 쓸쓸한데
나의 눈과 귀는 돌 속에 묻혀서도 여전히
천 년 신라쪽으로 속절없이 열려 있습니다
언제쯤 노래를 들려주시렵니까 그 언제쯤
서라벌 쪽에서 부는 바람 편에 당신의 안부와 주소가 적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보내 주시렵니까
그 편지 받을 수 있다면 비파암 진신석가께서 낮잠에 들면
바위 위에 벗어 둔 가사를 훔쳐 입고 어느 하루
당신을 만나러 저잣거리로 내려가고 싶습니다
내려가 그리운 당신 노래 한 소절만 들을 수 있다면
다시 돌 속에 잠겨 흘러 갈 오랜 잠이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노래 허리에 감고 또 한 천 년 무작정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길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 길 지도 위에 새겨 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 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돌 속에 숨은 내 사랑 찾아가노라면
산이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 길을
달빛 아니라도 환한 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 길 따라 내가 가네.
정 일근
김영동 - 은행나무침대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