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봄산에서는

류.. 2008. 3. 31. 08:59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 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그대, 생의 솔숲에서/김용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