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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323

단 한번의 사랑이 있다면 살다가 멈칫 멈칫 사람이 그리워 전화가 하고 싶고 그 누군가에게 한 통의 편지라도 쓰고 싶은 마음 들지 않던가요 정작 그랬을 때 받아줄 이 없어서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술을 마셔본 적이 있던가요 술 취해 묻습니다 마음이 따라가는 길 녘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욕심 없이 살고 싶진 않은가요 촌스럽게 아주 바보처럼 살아도 둘만은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그런 사람이 그립진 않은가요 텃밭에 일군 채소며 집 앞을 지키는 꽃들이 전 재산이어도 좋을 만큼 눈 안에 마음 안에 쏙 들어오는 그런 사람이 간절하진 않은가요 비가 오면 한 우산아래 발을 적시며 서로의 어깨를 감싸고 터벅터벅 걷고 싶진 않은가요 소담스런 밥상을 마주하고 반주 한 잔에 얼굴을 붉히며 취해 보고도 싶지 않은가요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툭툭 치며 깨워.. 2023. 11. 10.
아름다운 기억의 서랍 왠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저마다의 애잔하고 누추한 기억의 서랍 하나쯤은 누구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법이다. 막상 열어보면 으레 하찮고 대수롭잖은 잡동사니들만 잔뜩 들어있는 것이지만 그 서랍의 주인에겐 하나같이 소중하고 애틋한 세월의 흔적들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서랍 속 먼지 낀 시간의 흔적들과 꿈, 사랑, 추억의 잡동사니들까지를 함께 소중해하고 또 이해해주는 일이 아닐까. 추억이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그러므로 그걸 지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든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임철우의 중에서 2022. 9. 1.
사랑이란 그런 것.. 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 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 같은 것.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오 년이 되어도 읽지 못하는 두꺼운 책의 무거운 내음 같은, 사랑은 그런 것.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샀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의 문양 같은 것. 머쓱한 오해로 모든 것이 늦어버려 아물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실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돌의 입자처럼 촘촘하지만 실은 헐거운 망사에 불과한 것. 사랑은 그런 것. 백년 동안을 조금씩 닳고 살았던 돌이 한순간 벼락을 맞아 조각이 돼버리는 그런 것.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한 것. 흙 위에 놀이를 하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 있는 저녁의 나머.. 2022. 3. 27.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가 내리면 몰래 밖으로 나가 슬그머니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맨발에 운동화 차림이어도 당장 목적지가 없어도 좋습니다. 가다보면 저녁쯤엔 필시 어딘가에 닿겠지요 비가 내리는 날엔 바다든 산이든 어느 낯선 소읍이든 한가지 톤으로 제 무게를 빼고 떠 있습니다. 모든 풍경들이 감광지를 통해 내다보는 세상처럼 아득한 거리를 두고 자전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 날은 허름한 시골 식당에 앉아 김치전에 흰 막걸리를 마시고 싶습니다 혼자여도 그만입니다 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풍경처럼 나 또한 스스로 가라앉아가면 그뿐입니다 비 내리는 날. 떠날 수 없다면 누군가를 불러내 포장마차에 앉아 장어구이에 소주를 마시는 것도 그럴듯 합니다 포장마차는 누군가 둘이면 좋겠고 말 없는 친구이면 더욱 좋습니다 딱딱하고 좁다란 나무 .. 2021. 10. 31.
혼자가 혼자에게 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 정상에 거울 하나쯤이 설치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거울은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전신이 다 들여다보이는 정도라도 좋겠다. 힘겹게 오른 산 정상에서 하늘과 산 아래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 것도 좋지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거울을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도 좋을 것이고 그냥 온몸에 힘이 풀린 채로 실없이 웃기만 한다 해도 좋을 것이고 지나온 세월과 앞으로 다가올 바람에게 말을 걸어도 좋겠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견해해도 좋을 것이며 행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쓸쓸함에 빠지더라도 난데없이 세워놓은 큰 거울 하나를 통해 우리가 우리 안쪽에 진 빚이 어느 정도인 지를 조금은 알아갔으면 한다. 나 자신이라는 산봉우리와 나 .. 2021. 6. 7.
花樣年華 무슨 일이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법칙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자신을 드러낼 가장 좋은 시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시기는 평생에 한 번 반드시 오는 법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시기에 그들을 받아들일 용기를 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으로 인해 세상의 빛깔은 조금씩 흐려져간다. 나는 얼마나 흐려진 세상에서 살아왔던가. 내가 갖고 싶었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을, 내가 만나고 싶었을 때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내가 갈 수 있던 곳들, 그들은 이미 내 인생 밖으로 사라졌다. 지금 그들이 내게로 돌아온다고 해도,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때 그토록 애타게 갈망했던 것들과 함께, 세상의 빛깔들은 사라져 갔다. 그것은 .. 2020. 7. 18.
여행 얼떨결에 떠나자 기대는 조금만 하고 눈은 크게 뜨고 짐은 줄이자 어디라도 좋겠지만 사람과 엉키지 않는 순수한 곳이라면 만사를 팽개치고 뒷일도 접어두자 여정에 뛰어들어 보물이 드러나면 꿈꾸던 보자기마다 가득히 채워오자 문물을 얻지말고 세상을 담아오자 태엽을 달아 늘어지게 우려먹자 돌아오면 바로 어디론가 곧 떠날 준비를 하자 임영준 2020. 5. 22.
여행의 이유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일종의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관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김영하, 중에서 ♬ Enya - So I Could Find My Way 2020. 5. 12.
당신은... 당신은 나를 멈추게 하는 사람입니다. 길을 가다가 문득 멈추어서 하늘을 보며 당신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당신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일어날 수 없을 때 조차도 당신의 손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또 나아가게 합니다. 당신은 나를 돌아서게 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가다가도 당신이 뒤에서 부르면 미련없이 돌아서 당신께 달려갑니다. 당신은 나를 머물게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마냥 당신을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움 속에서 머무는 시간마저도 나를 성숙하게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신비이기에 머리로 헤아리지 않고 그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너무 풀기어려운 문제입니다. 허나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당신.. 2020.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