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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121

감나무 아래에 서면... 지루하게 계속되던 장마가 지나가고.. 모처럼 들꽃이 어지럽게 핀 산길을 걸어봅니다 밤나무숲 옆 외롭게 홀로 선 감나무 아래.. 풋감이 떨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홍시가 떨어짐과는 또 다른 애달픔이 한자락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감나무가 풋감을 떨구는 것은 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라지요 버리면 살고 끌어안으면 죽는다.. 애써 조랑조랑 맺은 열매를 다 쓸어안을 수 없음을 나무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숙한 과일로 숙성하지 못하기에 함께 매달려 있으면 나무만 상하기에 한창 성장하는 풋감들을 하나 둘씩 눈물을 머금고 맨땅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감나무 아래에 서면... 빈손인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2006. 7. 23.
길, 나무다리 몇해전, 남도에 다녀오던 길.. 금산 남이면을 지나다가 진악산 자락에서 보석처럼 숨어있는 보석사를 우연히 발견하곤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때 이후 나는 그 한적한 산사를 습관처럼 찾곤 했지요 나를 보석사 숲길과 가까와지게 한 것은 나무였습니다 오래된 전나무들이 양쪽으로 도열하듯 절간으로 드는 이를 반기고 작은 개울 위 놓인, 약간은 위태로운 나무다리를 건너면 빛 바래 더욱 근사한 대웅전 지붕을 볼 수 있고 다시 그곳에서 왔던 길 쪽으로 반만 돌아서면 천년 넘게 보석사를 지킨 은행나무가 늠늠하게 서있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장소는 바로 그 다리였습니다 숲 사이로 흐르는 작은 개울물, 새소리, 고색창연한 대웅전 처마 뒤로 높고 낮은 산들이 옹기종기 키 재기를 하는 모습.. 무릉도원에 홀로 있는 느낌을 갖게.. 2006. 7. 18.
살구 며칠 과음한 탓인지 어젠 종일 빗소리나 들으며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생일 맞은 고교 후배의 전화를 받고 산성동 뒷골목 작은 중국집에서 한잔 했습니다 이과두주 한병에 몸이 금방 나른해오더군요 일차로는 헤어지기 아쉬워 호프 두잔을 더 마시고 일어섰는데.. 그땐 이미 노래방 가자는 후배의 제의를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난 취해 있었지요 비도 내리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 몸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따라 지치는 건 당연하겠지요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몇그루 살구나무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지날 때마다 후두둑 제 몸의 일부인 살구를 아래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제 몸을 스스로 아래로 밀어내는 고통이 오죽할까요? 가만히 보니 살구는 그 높은 곳에서 혼신의 힘으로 뛰어내려 주인께 선물을 바치는 충직한 .. 2006. 7. 6.
빗소리 기다리던 비가 옵니다 이틀동안 좀 무리한 탓으로 오늘 아침은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서 게으름을 누립니다 풀풀 먼지 일던 마음을 빗소리가 적셔주고.. 여러가지 상념에 잠기게 합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물소리 없어 허전했던 계곡과 강에서 이젠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강 하류에서부터 살찐 물고기들이 상류로 거슬러오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빗소리가 반갑게 들립니다 새벽, 우의를 입고 뒷산에 오르다가 빗물에 씻긴 샛노란 살구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봤습니다 살구나무 주위엔 달맞이꽃이 빗물에 얼굴을 씻고 청초함을 자랑합니다 두가지 종류가 다른 노란빛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차 한 잔을 하고 성당에 다녀와서 책이나 좀 읽어야겠구나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꿉니다 오늘은 잠시 혼자 가 볼 곳이 있습.. 2006. 6. 25.
친구 내게도 가볍게 통칭되는 친구는 많다 그러나 가슴으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친구는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진정으로 만나는 친구가 되는 일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란 단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문득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지는 자연스러운 사람.. 곁에 없어도 무심히 이름을 떠올리면서 몇 마디 안부를 묻게 되고 언제라도 어제 만난 사람처럼 굳이 의례적인 인사가 필요 없어서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을 접게 되는 사람이다 수상한 세상에 함께 살아 갈만하다고 느끼는 감동을 주는 그런 친구는 귀하고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 친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진 것이 없어도 부자이고 .. 2006. 6. 17.
날마다 이별 바람스치는 데가 어디 들꽃뿐이더냐 오늘은 풀잎과 만났네 천년 전부터 세상을 떠돌던 바람은 등굽은 소나무 송진 내음도 기억하네 누군가를 깊게 사랑한다는 것은 증오하는 만큼이나 커다란 아픔이네 먹구름이 울고 비가 내려도 푸른 하늘은 늘 거기에 있지 않더냐 조금은 기쁜 듯 조금은 슬픈 듯 그렇게 하세 천년 전부터 바람은 날마다 이별이었네 날마다 이별이었네 -날마다 이별/이길원 해질 무렵, 아파트 옆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 양쪽에 줄맞춰 서있는 느티나무를 보며 하루가 다르게 푸른 생명으로 차 오르는걸 느낀다 초록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대체로 살아있는 생명감이란 온기를 의미하는 것인데.. 왜 살아 움직이는 숲의 기운은 서늘함인가? 나무의 영혼은 차가운 것일까? 숲에 살고있는 것들의 영혼의 파장으로 서.. 2006. 6. 14.
우린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관념들이 있다 오랜 시간 각자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길들여졌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로의 매력에만 이끌려 그걸 잘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가까워지고 깊이 사랑한다고 느끼면서부터 서로가 몰랐던 부분의 갭이 느껴지고 결코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는 놀라고 실망하고 상대를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우린 정말 사랑했을까?" 가슴에 상처를 입고 아주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이것이 진정 사랑인걸까? ..... 사랑하는 사이라고 믿으면서도 사소한 문제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을 때 금새 대화는 막히고 서먹서먹해지고 만다 그 짧은 시간동안 일어나는 불편한 침묵.. 그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이내 무심해지고 .. 2006. 5. 1.
오래된 집터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옛 절터나 집터를 찾아가 보라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살지 않는 동안 그 곳은 그냥 버려진 빈 터가 아니다 온갖 나무와 이름모를 들꽃들이 오가는 바람에 두런거리며 작은 벌레들과 함께 옛이야기처럼 살고 있다 밤이 되면 이슬과 별들.. 2006. 4. 29.
당신은 이제는 보다 많은 시간을 혼자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당신은 내게 말하고 있군요 먼 여행도 혼자 떠나야하고, 바다 속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도 혼자 헤쳐가야한다고.. 배가 고프면 언제까지 상을 봐줄 당신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 컵라면에 물 부어 먹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겠지.. 2006.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