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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121

깊어지고 싶다 더러 영혼의 깊이가 느껴지는 눈빛을 만날 때가 있다 우수에 잠긴 여인의 눈빛 예지와 통찰력으로 빛나는 선승의 눈빛 지혜롭고도 인자한 노인의 눈빛... 그런 눈들을 마주할 때면 깊은 그늘 뒤에 드리워진 비밀스러운 삶이 궁금해져서 한 발 바짝 다가앉고 싶어 진다 속 깊은 영혼에의 이끌림.. 속 깊은 영혼이라.. 표현이 좀 모호하긴 하다 보이는 눈의 깊이도 잴 수 없거늘 보이지 않는 영혼의 깊이를 어찌 감지한다 할 수 있으랴 깊어지고 싶다 어딘가 좀 그윽해지고 싶다 깊이가 주는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사는 내게 시간과 깊이의 함수관계는 저만치 가물거리는 불빛과도 같다 그것이 바다를 밝혀주는 등댓불일지 미혹하는 도깨비불일지 알 수 없다 하여도 길 위에 선 자에게는 아득한 그 불빛이 일단은 희망이고 위로일 수밖에 없.. 2007. 1. 3.
친구들 11/22 지하철 강변역 부근.. 이렇게 12명이 한자리에 모인 게 졸업하고 몇 년 만인지... 긴 세월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친구들.. 어제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전혀 낯설지 않았던건.. 우리가 여전히 친구이기 때문일 게다 반가웠다 친구들아! ............... 때로는 상처 입고 때로는 기뻐하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던 그날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지는 해를 몇 번이나 셋을까 친구는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 있어 -나가부치 쯔요시 '乾 杯' 중에서... 2006. 12. 13.
겨울산을 오르며... 새벽.. 겨울산에 오른다 숲길을 덮고 있는 낙엽.. 습기가 가득한 산길 어둠이 안개처럼 휘돌아드는 산길에 낙엽 향기가 피어오른다 낙엽을 밟고 산을 오르노라면 발에 밟히는 낙엽이 향기를 뿜어낸다 꽃향기보다 기품 있고 은근한 향기.. 옷 벗은 나무들..잎이 무성했을 때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결한 모습이다 가지들을 들어 하늘을 향해 모으고 고해성사를 바치는 모습 같아 숙연하기까지 하다 낙엽을 밟으며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아온 자신과 비로소 만나기도 하고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들이 얼마나 많은 낙엽으로 떨어져 쌓여 내 아픈 기억들을 묻어버렸을까? 하산길.. 산비탈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잠시 쉬어본다 밝고 투명한 햇빛 속에 잠들어 있는 영혼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낙엽이 그.. 2006. 12. 7.
그리움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갈꽃이 바람에게 애타게 몸 비비는 일이다 저물녘 강물이 풀뿌리를 잡으며 놓치며 속울음으로 애잔히 흐르는 일이다 정녕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등성이 위의 전설이 여윈 제 몸의 안간힘으로 안타까이 햇살에 반짝이는 일이다 김영석 가끔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그리움이라 이름 붙일 만한 편린들을 더듬어 본다 독한 열병과도 같고 무의미한 자기최면과도 같던 빛나던 시간들은 이제 담담한 빛깔로 퇴적되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바래고 부서진 마른 꽃잎처럼 향기도 빛깔도 잃어버린 기억의 잔해만이 수석에 박힌 불연속 무늬인 양 희미하게 떠 보일 뿐이다 말라가는 풀내음 같은 그리움으로 되새겨 볼 기억이 있다면 가는 세월이 덧없지만은 않을 것 같다 희망이 일상의 추진력이 되듯 그리움도 삶의 에너.. 2006. 11. 16.
첫눈 첫눈.. 노오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인 국도위에서.. 올해의 첫눈을 맞았습니다 모든 자연이 몸을 비워 겨울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직은 가을이라고 고집을 피우느라 겨울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날, 첫눈 내리던 그 길은 영락없는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모든 그리움들이 사랑이라는 온기를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또 한가지, 기다림 끝에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숙명처럼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눈은 들판과 마른 나무 가지에 앉자마자 생명을 다한 듯 사라졌습니다 아주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었던 건 생명 다함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시작인 겨울, 언제나 언 손을 녹여 줄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추운 겨울도 따스해질 것을 믿고 있습니다.. 2006. 11. 6.
단풍 단풍이 조금씩 남하하고 있다 단풍이 고우면 추위가 일찍 온다는데 예년보다 3~4도 이상 높은 요즘의 날씨는 올 가을 단풍이 기대 이하가 될지도 모른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사진으로 본 설악의 단풍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자연의 변화 중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의 저마다의 그윽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가을이 주는 느낌은 다른 계절과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가장 황홀한 순간은 홀연히 자신의 소유를 벗어던지는 그 순간이 아닐까 다양한 색상의 단풍을 보면 1년 내내 그 모습 그대로였으면 좋겠는데 낙엽은 가장 황홀한 그 순간 모든 것을 미련없이 털어내기 시작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산에도 드다어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짙어가는 단풍을 보며 여름 내내 앓았던 아픔이며.. 2006. 10. 12.
지금, 이 순간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을 뒤흔드는 번뇌, 갈등.. 그것에 따라 몸도 부실해지고... 바뀌는 계절을 언제부턴가 나는 너무나도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처음 이 병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 마음이 감당할 수 없어질 때면 다음 단계로 마음에서 몸으로 옮겨가곤 한다 기대에 부푼 일이거나 하기 싫은 숙제를 눈앞에 두고 의례껏 치르는 한 차례 몸살처럼 바뀌는 계절을 눈앞에 두고 내 몸과 마음이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최상이라고... 지금 이 순간..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이들이여 우리에게 기다릴 미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지금 이 순간, 최상의 만족감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똑 같은 것을 누린다 해도 미래의 그것은 지금과는 .. 2006. 9. 7.
일곱시 저녁 7시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 꺼리낌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시의 시작.. 해가 긴 여름에도 적당히 노을 지고 어둠이 덮히는 저녁나절 컴컴하지도 않고 환하지도 않은 일곱시.. 저녁 약속시간도 여섯시면 이르고 여덟시면 늦으니 일곱시가 적당하게 좋다 푸르게 짙어가는 어둠 속에 노란 달이 뜨고 새떼들이나 사람들도 둥지를 찾아 안온한 휴식을 취하는 시간 일곱시... 그 시간 그리운 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면, 먼곳에서 차를 타고 일곱시에 도착한다면,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역전에서 기다린다면, 싱그러운 바람 한자락을 이끌고 그리운 이가 나타난다면 참으로 행복했다 ...... 언젠가부터 일곱시의 설레임이 없어졌다 약속시간을 굳이 일곱시로 하자고 우기지도 않는다 일곱시에 사람을 만나도 무심하게 별 의미를 두.. 2006. 8. 20.
풍경 하나 산내에서 강진으로 가는 길.. 뜨거운 8월의 태양 아래 나는 서있었다 갈 곳이 막연해서가 아니라 찬란한 정오의 햇빛과 정지된듯 고요한 옥정호의 깊은 푸름에 나를 유추해 보는 시간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 듯 해서다 풍경은 기다림 끝에 있으며 그것은 꿈을 전제로 하는 자연의 흐름에 다름 아니다 저 풍경 속에서 미움이나 증오를 떠올리는 사람은 결코 없을 터 흐르는 것은 흘러서 아름답고 멈추는 것은 멈추어서 아름답다 나는 옥정호가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내 소유는 아니어도 상관없는 오막살이 한채 갖고 싶다 욕심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햇살 많은 곳에 나지막한 산들과 호남의 푸른 들녘의 사계를 담을 수 있는 창이 큰 거실 하나... 섬진강댐 위에서 나는 건너편으로 보이는 작은 민가 몇 채를 부러워하며 쉽게 자리를 뜨.. 2006.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