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중학교(노성면 교촌리) → 명재윤증 고택 → 노송궐리사 → 전망대 → 노성산성 →
노성산 정상(348m) → 금강대도 노성본원 → 임도 → 가곡리 → 병사저수지
총 6.8km, 2시간 30분 소요
산행 시작부터 내려올 때까지 전투기 굉음에 헬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그런 소리 무심하게 흘려듣겠으나.. 시절이 하수상하니 작은 소음에도
괜히 심란해진다 이 나라는 함량미달인 사람이 올라서는 안될 자리에 올라.. 나라를 망치고 있고
바다 건너에서는 깡패같은 넘이 대통령이 되고.. 막말에 선동이나 일삼는 삼류 사기꾼도 대통령이 되고..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는 꼴이 정상은 아니다
한시부터 가는 비까지 뚝뚝 떨어지니.. 산행의욕이 떨어져서 서둘러 하산
낮은 산이나 주위가 평야지대라 노성산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차분히 감상할
기분이 나질 않았다
아니 기분이 꿀꿀해졌다 술 생각 나는 날.
명재 윤증 (明齋,尹拯, 1629 ~1714)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 본관은 파평(坡平).
젊어서 유계(兪棨)·김집(金集)의 문인이 되어 학문을 익혔고 뒤에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 되었으나 사제(師弟)의 의를 끊었다. 1663년(현종 4)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그를 조종에 천거하였으나 사퇴하였다. 그 뒤 호조참의·대사헌·우참찬·좌찬성·우의정
·판돈녕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나가지 않았다. 1681년(숙종 7) 송시열과 사적인
문제로 절교한 뒤 소론의 영수가 되어 노론의 송시열과 대립하였다. 이때부터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이산(尼山)에 머물며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힘썼다.
1715년(숙종 41) 간행된 스승 유계의 저서 《가례원류(家禮源流)》의 발문 문제로
송시열의 노론과 당쟁이 격화되고 소론이 패하여 모든 관작을 추탈당하였다가
22년(경종 2) 복구되었다. 홍성(洪城)의 용계서원(龍溪書院),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영광(靈光)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명재의례문답(明齋疑禮問答)》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시호는 문성(文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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