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열매를 따줘
나뭇잎은 열매에 매달려 위태롭네
당신이 발돋움해서 따온 어린 모과 열매
조심스레 혀끝에 대본다
떫고 쓴 오후 세시
이 미숙함이 우리 사랑 같아
풋과일처럼 웃고 있는 당신의 어깨 위에
모과나무 잎사귀 하나 망설이며 내려와 앉는다
오래도록 길 너머를 그리워해 본 자만이 갖는 불안한 잠,
그 끝에 갖는 오수의 달콤함 같은 것
우리 그렇게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이 늦은 봄 다 갈 거야
해지는 정원 키 큰 모과나무 아래
설익은 열매 하나
나뭇잎 하나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어느 꽃나무 아래 앉아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풀잎 끝에서 흔들리고 있다
꽃이 시들고 있다
이미 무슨 꽃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도 너는 있다
빈 하늘을 볼 때마다 너는 떠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서 있다
훌쩍 서 있다
나는 저 마당보다도 가난하고
가난보다도 가난하다
나는 저 마당가의 울타리보다도 가난하고
울타리보다도 훌쩍 가난하다
---가난은 참으로 부지런하기도 하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너는 없고
너는 훌쩍 없고
없고 그러나
내 곁에는 언제나 훌쩍 없는
사람이
팔짱을 끼고 있다
---빈 마당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뿐인 심장을 만진다
-빈마당을 볼 때 마다/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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