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行

류.. 2011. 8. 23. 14:32

 

 

        손 흔들고 떠나갈 미련은 없다
        며칠째 청산에 와 발을 푸니
        흐리던 산길이 잘 보인다.
        상수리 열매를 주우며 인가를 내려다보고
        쓰다 둔 편지 구절과 버린 칫솔을 생각한다.
        남방으로 가다 길을 놓치고
        두어번 허우적거리는 여울물
        산 아래는 때까치들이 몰려와
        모든 야성을 버리고 들 가운데 순결해진다.
        길을 가다가 자주 뒤를 돌아보게 하는
        서른 번 다져두고 서른 번 포기했던 관습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 숨결처럼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한 가정의 고민으로 피어오르고
        생목 울타리엔 들거미줄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실로 이 세상을 앓아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

           

          이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