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당신을 향해 피는 꽃
류..
2011. 6. 11. 10:02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드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내 기억 속에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헤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박남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시간이란 하루나 일주일,
혹은 한달을 단위로 하여
한묶음씩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단조로움 속에서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만날 수 없어 불안한 애인이나
이루지 못할까봐 조바심나는 희망따위의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처음부터 포기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