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류.. 2009. 9. 21. 08:33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정희